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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속강좌

[김태곤 교수]◈ 한민족의 원본사고

10,568 2017.11.23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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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原本思考 김 태곤

原本이란 무엇인가?

사람의 사고에는 그 근원이 되는 생각이 있고, 그런 것이 2차 3차적으로 변형되어서 사람의 의식세계에 나타납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행동하고 사고하고, 또 무엇을 하는 데에도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 밑바탕에는 사고의 원본이 있어 그 바탕 위에서 행하게 됩니다. 인간이 아무리 큰 소리를 지르고 아무리 큰 일을 한다고 해도, 결국 그것은 원본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본이란 인간의 근원적 생각이고, 또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근원 곧 원천이 됩니다. 만약 사고의 원본이 없다면 문화활동이나 과학활동도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무엇이 되기를 원하고 또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가 하는 점에서 원본은 검토되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곧 우주문제, 그리고 우주 안에서 사는 인간들의 행동, 연사(年事)의 흐름입니다만, 역사란 무엇이고 문명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 자연과 문명, 자연과 인간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이런 문제에 기착되게 됩니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민속현장을 조사해왔는데, 제가 처음 무속을 연구하면서 방향을 정해가는 과정을 말씀드리자면 한이 없겠지만, '원본'이라는 용어하나로 전부 묶어서 얘기할 수 있겠고, 그리고 무속을 연구했다기보다는 무속에 담겨있는 한국인의 생각을 찾으려 했습니다. 무속은 전통적인 것부터 신앙적인 것까지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한국인의 원래의 생각을 찾고자 노력했던 것입니다.

1960년은 제가 대학 2학년 때였는데, 한국의 얼을 공부하고 싶었으나 얼이란 끝이 없을 것 같아서 교수님께 물었더니 한마디로 불가능하다고 하셨어요. 그 때 아직 개척되지 않은 분야가 무속이었고, 무속은 다소 연구하기 꺼려하는 분야이어서 내가 개척해야겠다고 작정했습니다. 무속연구방법론을 배우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으나 큰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도서관에서 혼자 공부도 해 보았지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당시의 무속의 연구동향은 한국문화의 원류가 무속 안에 있고, 사상적인 원초도 분명히 내재하고 있을 것이라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1981년에 한국무속연구라는 책이 발간되었는데, 그 책에서 원본이라는 연구방향을 찾게 되었습니다. 6-70년대 당시에는 대체로 서양이론을 많이 따르는 실정이어서, 공부의 방향성 문제로 많이 고민했습니다. 정말 자기 목소리로 자기 얼을 공부하는 학자가 과연 몇명이 되는가가 그 나라의 학문척도나 문화의 척도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공부한다고 강단에 서고 책을 쓰고 있을 때, 스스로 내 머리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를 고심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무속의 연구란 무속 그 자체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무속 속에 담겨있는 인간의 의식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인간의 의식이란 무속을 생성시켜서 전승시켜온 그 관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의식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결국 원본사고입니다. 이와 같은 원본사고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아키타입(archetype)이란 용어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의 목소리를 내는 학자가 이론을 세우는 데는 목적과 방법이 있습니다.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방법론을 세웁니다. 거기에는 엄연히 적용하는 대상인 재료가 있습니다. 서양학자의 경우는 당연히 자신의 재료에 맞는 방법을 써서 결론을 유도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융은 스위스라는 상황조건에서 정신분석이론을 세웠지만, 그것이 한국 사람에게 적용될 때는 많은 문제점이 야기됩니다. 맞지않는 점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융의 아쉽터스에서 단서를 찾은 멀치아 엘리아데가 아키타입이란 말을 만들었습니다. 3년 전에 작고한 시카고대학 종교사학 교수였습니다. 엘리아데가 종교현상이론에 적용한 것이 아키타입인데, 한국에서는 무조건적으로 아키타입을 적용합니다. 문화의 아키타입, 민속의 아키타입, 신화의 아키타입 등등으로.

엘리아데는 원래 루마니아 사람인데 인도에서 요가로 박사 학위를 얻고난 후 프랑스에서 교수도 하고 시카고대학에서 작고할 때까지 30권이 넘는 많은 저술을 남겼습니다. 그의 아키타입이론은 서양의 기독교에는 들어맞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신화나 종교, 그 어디를 살펴보아도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히브리계 기독교 계통에만 아키타입이론이 들어맞고, 한국이나 일본, 중국, 그 외 서양에는 잘 맞지 않는단 말입니다. 즉 아키타입이란 용어로 한국의 문화나 한국의 신화, 한국의 민중, 한국의 역사문제에 적용시키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발을 신발에 맞춰야지 신발에 발을 맞추는 우를 범해선 안되잖아요. 신발에 비해 발이 크다고 해서 발을 잘라 내서야 되겠습니까?

굿은 왜 하는가?

그래서 무속에서는 영혼이 핵심.

그러면 다시 원본(原本)으로 돌아가서 무속의 어디에 묻혀있는 원본을 찾았는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말씀드릴 때 저는 사상이란 말을 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사상이란 말은 일관된 체계 그리고 목적이나 당위성을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얘기하려는 무속이나 민속은 당위성을 강요하지 않는 자연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생각입니다. 자연적인 생각,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사고(思考)라 할 때,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인위적인 사상(思想)과 구별하겠습니다. 그래서 원본이라고 할 때는 사고의 원본을 의미하고, 원래 사고(思考)에는 본(本)이 있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하기 위해 행위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굿입니다. 이 굿은 굿을 원하는 민중(民間人)들이 없으면 못하는 것입니다. 즉 민중이 있기에 무당이 있고 굿이 있는 것입니다. 전국적으로 약 300여 종류의 굿이 전승되고 있는데, 공통점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이 10가지로 축약됩니다.

① 굿할 장소를 깨끗히 정화하는 부정굿 ② 신을 청하는 청신굿 ③ 조상을 위해 하는 굿 ④ 아들 낳기 위한 굿 ⑤ 무병장수를 위한 굿 ⑥ 복을 비는 굿 ⑦ 액을 물리치는 굿 ⑧ 병을 낫게 하기 위한 굿 ⑨ 죽어서 영생하기 위한 명부굿 ⑩ 청한 신을 돌려 보내는 굿

위의 열가지 중에서 ① ② ⑩의 세 굿은 의례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세가지를 빼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조상의 근원을 이어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의 명(命)이 길어 사는 동안 복(福)은 많고 액은 물리치고, 병이 들면 고치고 죽어서는 명부에서 영원히 살도록 하기 위해 굿을 하는 것입니다. 굿의 목적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영원히 오래 살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무속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영혼입니다. 마음을 편하게 하고 사람들과의 갈등을 해소하며 복은 많게 하고 건강하게 오래도록 잘 살도록 비는 것이므로, 영혼은 무속에서 핵심이 됩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굿에서는 양극적(兩極的)인 방법을 사용합니다. 아프면 건강하게, 가난하면 부자로, 명이 짧은 것은 길게 해달라고 비는 것처럼, 양극적인 순환적 방법을 사용합니다. 즉 무속의 굿은 순환사고가 그 기반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학적으로 죽은 사람은 갱생할 수 없고, 아픈 사람은 거동할 수 없고, 일찍 죽을 사람을 길게 살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무속에서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당뿐 아니라 일반인 곧 굿을 의뢰하는 사람도 무속에서는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Cosmos와 Chaos의 순환, 왜 일어나는가?

그러면 순환사고는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를 알아보겠습니다.

<우주 밖-신(神) | <우주 안 - Cosmos>

+------------------------+------------------------------+

| chaos | 現實 宇宙 : 秩序 |

+------------------------+------------------------------+

| 永遠:未分化 +- 無空間 +- 天-+ - 空間 -+ |

| +- 無時間 +- 地-+ +- 分化秩序 |

| +---------時間 -+ |

| 靈魂 ---+- 人 --- 肉體(空間) |

| | 制約과 終末, 瞬間 |

+------------------------+------------------------------+

| O<--+-- X |

| +-----> O |

+------------------------+------------------------------+



현실은 경험적이고 실질적이며 실증적입니다. 현실을 크게 보면 우주의 하늘과 땅으로 되어있고, 우주는 또 질서로 되어있습니다. 우주의 우(宇)는 공간을 의미하고, 주(宙)는 시간을 뜻하며, 공간은 오방(五方) 즉 동서남북 사방과 중앙의 입체적 공간을 말합니다. 영어로 우주(宇宙)를 cosmos라고 하는데, cosmos의 1차적 의미가 질서이고 제2의 의미가 하늘과 땅의 우주인 걸 보면, 한자나 영어의 우주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주는 공간과 시간의 질서로 짜여져 있고, 공간은 그 공간이 시작된다는 시간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시간은 처음과 끝이 정해져있기 때문에, 시간이란 말 속에는 종말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이라는 조건 내에 있는 우주공간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주를 인간의 육체로 말하면 육체라는 것이 공간입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육체가 지속되는 시간을 의미하고, 육체가 태어날 때에는 이미 죽음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공간과 시간조건을 갖고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화질서(分化秩序)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인간세계에는 종말이 존재하는 것이며, 또 이런 것들은 순간적이기 때문에 세속(世俗)이라고 합니다.

무속에서는 순간적인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반대편을 향하게 됩니다. 이쪽(Chaos)은 하늘과 땅의 구별이 없고 공간도 시간도 없는 절대무의 경지입니다. 이 절대무의 상태를 영원한 것으로 보고 영원한 것은 신성하여 참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굿을 할 때는 우주 안에 존재하는 공간과 시간을 없애서 반대편의 영원한 상태에 몰입하여 무한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고통스러운 현실공간을 없애버리면 고통의 원인도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종교적으로 여기서 신(神)을 만난다고 합니다. 무속에서도 여기서 신을 만나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고 다시 세속으로 나오면 고통없는 평화로운 상태로 됩니다.

굿을 한다는 것은 곧 우주공간의 현실을 차단하여(고통의 근원제거) 반대편(위의 도표에서는 왼쪽)에서 새로이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굿은 원래 밤에 합니다. 이쪽은 밤이고 저쪽은 낮이기 때문입니다. 신이 오는 것이 아니라 신이 있는 곳으로 들어간다는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무당이 될 때 밥을 못먹고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면서 몸이 마르게 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당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신의 꿈을 꾸게 되고, 급기야는 정신이상 상태가 되어 일상적인 생활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즉 위의 표에서는 오른쪽 세계에서 왼쪽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의 무당은 더운 여름에도 겨울옷을 입고 신을 만나 신의 권위를 갖고 비범한 사람으로 거듭 태어나게 됩니다.

이것은 곧 하늘과 땅이 바뀌어질 수 없는, 공간과 시간의 분화질서(分化秩序)가 엄격한 이 세계에서 시공이 미분화(未分化)된 저 세계로 순환한 것이고, 시공의 구분이 없는 세계에서는 그 근원이 하나이기 때문에 동(東)에서 서(西)로, 동(東)에서 남(南)으로 서로 바뀌는 순환이 지극히 자유롭습니다. 현실세계에서는 너무나 고통스러워 살 수가 없기 때문에 반대편으로 와서 영원히 살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것을 미신이나 비과학적이라고 하지만, 현세의 모든 예술이 대부분 이와 같이 되어있습니다.

문학과 연극의 경우 현실의 불만에서 시작하고 그 불만이 해소된 반대편의 이상(理想) 등을 생각하면서 만들어집니다. 또 음악의 경우 시끄럽고 잡스런 음들을 이상적인 음으로 배열하여 현실적인 시간과 공간에서 결합 가능하게 하여 음악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굿 역시 불결하고 의미없는 속된 순간적인 현실을 소거하고 이상적인 세계에서 영원히 지속하고자 굿을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원본입니다. 사고의 원본은 미분성에 기반을 두고있기 때문에 순환이 자유롭고 자기의 존재를 지속시켜 나갑니다. 이 원본의 번역어로 original forms, archetype 등 여러가지가 있으나, 주로 archepattern을 사용합니다. arche는 존재의 근원원질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우주 밖의 '카오스'쪽에서 보는 주체적 존재사고(存在思考)라는 말입니다. 이런 근원적인 사고가 미분성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인간은 항상 자기위주로 생각하고 그것이 한국인 상(象)의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우주 안(cosmos)의 인간의 경우 죽으면 반대편(chaos)으로 가게 됩니다. 신(神)이 이쪽(chaos)에 있다는 것이고, 또 이런 순환은 무한히 반복됩니다. 인간 존재의 근원이 영원한 상태(神, 三神)인 그 신(神)들이 사는 세계는 낙원이란 말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낙원은 질병이 없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이 풍부하여 싸움이 없고, 죽음없이 영생하는 곳으로 우리 민담에는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제주도에서 굿을 할 때 맨 처음 시가로 노래를 부르는 초당제가 있는데, 그 내용을 얘기해 보겠습니다.

"하늘과 땅의 구분이 있기 이전에는 어둠이 혼돈되고, 그 어둠 속에 빛이 있어 위쪽에는 촘 이슬이 내리고 밑쪽에는 검은 이슬이 싸여 하늘과 땅이 되었어요. 그리고 하늘에는 해 두개 달 두개와 별이 생기고 그 뒤 지상에는 인간이 태어났는데, 낮에는 해가 두개여서 너무나 뜨거워 견딜 수가 없고, 밤에는 달이 두개여서 잠을 잘 수 없었어요. 그래서 하늘에 있는 천지왕이 지상을 내려다보니 너무나 말이 아니여서, 어느날 해 하나 달 하나를 삼키는 꿈을 꾸고 지상에 내려와 지상의 여신과 혼인을 해 이레동안 살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갔어요. 천지왕은 하늘로 올라가면서 지상의 여신에게 아들 쌍둥이를 낳으면 대조랑 소조랑으로 하라는 이름까지 지어주고 정표로 박씨 하나를 주고 갔습니다. 필요할 때 쓰라고. 그 후 쌍둥이가 태어나고 이 아이 둘은 박씨를 갖고 아버지를 찾아서 하루만에 수천리를 걸어 올라갔어요. 박대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용상에 박대가 담겨 있어서 아버지를 찾았답니다.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지상세계가 어떤가 물어보니, 해가 두개고 달이 두개여서 살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라고 대답하니, 천근되는 무쇠활과 백근되는 활 두개를 주면서 뒤에 가는 해와 달을 쏘아 떨어뜨리라고 했어요. 그래서 해 하나와 달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왕이 되어 세상을 다스리겠다고 하여 형과 내기를 하는데, 동생이 사악하고 자꾸 속이니까 형은 귀찮아서 이세상을 동생에게 주고 저세상으로 가 버렸습니다. 사악한 동생이 이 세상을 다스리니 도둑,강도, 폭력 등이 이 세상에 많이 있게 되었어요." 이런 신화들은 중국이나 일본, 게르만족에도 많이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하늘과 땅이 분화되어 생기는데, 이 어둠은 공간도 시간도 없는 허공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 우주를 생성케 하는 어둠의 혼돈(Chaos)이 있었고, 인간의 육체가 영혼의 상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즉 어둠의 혼돈에 빛이 있어 우주에 시간과 공간이 생기고, 그 분화질서로 인해 종말이 오며, 그리고 다시 순환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말세론을 주장하는 것이나 불교에서 내세불로서 미륵불이 온다는 것도 종말을 의미하는 동시에 순환사고에 기반을 둔 것입니다. 무엇이 순환하는가 하면 우주의 시공이 순환하는 것이고, 왜 순환하는가 하면 농경에 비유컨데 봄에 씨뿌려 여름에 키우고 가을에 거두기 위해서입니다. 겨울에는 폐장하여 없애고 다시 순환사고에 의해 순환하게 됩니다.

未分性에 기반 둔 原本思考 그러면 한국인의 인간상(人間像)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미분성에 기반을 둔 사고의 원본은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아보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한국인 상(像)은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상을 말하는 것이고, 한국인은 민간인을 말합니다. 민간인이란 개념은 관청의 관리나 군대, 학교 같은 인위적인 조직으로서 하나의 목적을 위해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연인으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런 민간인에 촛점을 맞추어서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한국인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세가지 입장을 보면 첫째, 기독교 신학의 입장에서는 한국인은 이성이 마비되고 체면과 나태성이 많고 요행을 바라고 윤리의식과 역사의식이 결여되어 있고 주술신앙과 혼합주의를 조장한다고 말합니다. 둘째, 심리학 특히 정신분석학적 입장에서는 한국인은 책임의식과 독립의식이 결여되어 있고 도피의식과 편집성이 강하다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셋째, 민주화한다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한국인은 폐쇄적이고 개성에 집착하고 사회적 통합력이 결여되어 있다고 극단적인 비판을 가합니다. 이 세 견해는 문명과학적 입장에서 본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분명 한국인은 희망을 찾을 수 없고 백년 천년이 지나도 뭉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 미분적(未分的)인 원본사고 입장에서 보면, 다음과 같은 긍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먼저 미분성 관점에서 보면, 한국인은 자연 그대로의 신비성을 갖고있습니다. 미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한계성이 불분명하고 자아중심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분화단체 같은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폐쇄적이고 고립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분화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단결과 화합을 더 잘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옆의 도표를 보세요.

A는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B 를 끌여들이려 하고, B역시 자기중심 적이기 때문에 A를 끌어 들이려 합니다.

+--------------------+

|+--+ +--+|

|| | +--+ +--+ | ||

||A | |B | |A | | B||

|+--+ +--+ +--+ +--+|

+--------------------+


A와 B는 서로 대등하다는 것을 인정해주면 뭉칠 수가 있는데, 각 개체가 자기 중심적이면 합쳐질 수 없습니다. 반대로 합이 잘되는 사회, 예를 들면 서양 같은 사회는 다른 사람을 대등하게 인정하고 간섭하지 않기 때문에 잘 뭉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면 외에 긍정적인 면을 보면 인정(人情)이 많다는 것입니다. '너는 너, 나는 나'라고 해서 갈라서는 게 아니라, '너와 나는 하나다'는 생각 하에 동정하고 서로 도와 주게 됩니다. 대도시에서는 사람이 쓰러져 다 죽어가는 것을 보고도 너는 너고 나는 나이기 때문에 도와주지 않는다고 하지만, 시골에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분화가 되면 우선 정(情)이 없어집니다. 반면 미분성은 자연적인 것이기 때문에 소박한 인정을 가지고 있어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좋은 점을 갖고있습니다.

둘째, 순환적 입장에서 볼 때 미분성은 순환성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인내와 여유가 있고 낙천성이 있는 결과를 만듭니다. 절박감이나 불안, 초조 같은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속담에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은 고생은 고생으로 끝나지 않고 순환되기 때문에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것이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범에 물려가도 정신차리면 산다는 것은 다 죽은 것이 아니고 범에 물려간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민요에서 살펴보면, '나물먹고 물먹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삶이 이만하면 무던하다'에서 쌀이 없어 나물먹고 냉수로 배 채워도 절망하지 않는 낙천성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순환성을 갖고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여유와 낙천성은 대형범죄나 한탕주의 등을 배제케하여 순리대로 살아가게끔 하는 사회순기능적인 역할을 합니다.

세째, 지속성 입장에서 보면 보수성이 아주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수성이 강하면 사회가 정체되지만 정통을 고수하게 되고 개성을 갖게 합니다. 또 지속성은 혈통을 계승하려는 의식을 강하게 해서 근원을 중시하고 조상을 잘 받들게 합니다. 현대사회에서는 하나로 뭉치기는 힘들고 미분성은 자꾸 분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현대사회는 '인간화 운동'을 부르짖는데, 이 인간화 운동의 정의를 간단히 내려본다면, 사회가 분화되기 이전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분성에 기반을 둔 원본사고를 갖고있는 인간상을 가르칠 때 인간화되었다고 하고, 조직적으로 기계화된 인간을 비인간화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현대사회는 그와 같은 질서를 말하면서 이율배반적으로 자연적인 인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未分性과 미래의 人間像 결론적으로 어떤 것이 바람직한가 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미분성에 기반을 둔 원본사고를 갖고있는 인간상이 바람직하다고 하겠지만, 그것만 전부 이루어진다면 현대사회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현대에는 사회조직이 필요한데 이론상으로는 자연인 반, 현대인 반으로 반반씩 존재한다면 좋겠지요. 지금의 사회는 자연적인 인간상에서 현대적 인간상으로 혹은 현대화된 것에서 자연적인 것으로, 극과 극으로만 치달리려 한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역사문제나 문명문제 등이 대두됩니다.

역사는 인간에 의해 이루어진 사건들의 총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 살고있는 동물의 역사에는 이루어놓은 것이 없으므로 역사가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역사는 문명과 함께 논의될 수 있는데, 이 때 우리는 문명을 자연으로부터 인위적인 상황으로 떨어져나온 상태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자연과 인간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멀어진 관계만큼 문명화되었다고 표현하는데, 그것은 한편으로는 자연을 훼손시키는 결과를 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인간은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공존하도록 되어있었는데, 도구를 사용해서 자연을 상대적으로 공격하여 정복하면서 자연으로부터 떨어져나오게 되었습니다. 도끼나 칼, 철기도구로부터 공간과 시간을 정복하려는 여러 도구들 즉 자동차에서 비행기, 비행기에서 우주선 등으로 이제는 우주까지 제압하려고 하는데, 아무리 그렇게 한다고 해도 인간은 역시 미분적인 존재이고 인간의 원본사고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나이를 먹어가며 시간의 순환성 속에서 살고있는 한, 미분성의 원본사고를 갖고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시간에 얘기한 것은 주로 원본사고이었고, 한국인의 인간상, 한국인의 심성을 볼 수 있는 원본의 기준점으로 미분성과 순환성, 지속성의 세가지 특성을 제시했습니다. 이 특성들이 현대사회에 역기능으로 작용하는 점도 없잖아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성 회복, 곧 인간화를 위해서는 결국 미분성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미분성은 인간성을 논의하는데 있어 아주 중요한 것이며, 또 미분성이 희박해질 때는 인간성도 사라진다는 얘기를 강조하며 강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민족의 原本思考 -------------------------------------------------------------------------------- ◆ 약 력 국학대(현 고려대) 국문과 졸업 경희대 대학원 수료 동경대 문학박사(민속학) 원광대 부교수, 동 대학 박물관장 및 민속학연구소장 역임, 경희대 국문과 교수 역임, 동 대학 민속학연구소장 역임, 한국민속학회장 역임, 문화재 전문위원 역임, 한민족학회장 역임, 국제 샤머니즘학회장 역임

저 서 황천무가 연구, 한국무가집(1-4), 한국민속학, 한국무속연구, 한국사상의 원천, 한국민간신앙 연구, 한국의 무속신화, 한국민속학 원론, 무속과 영의 세계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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